변질된 복음을 더 좋아하는 교인들
가브리엘 10.09.21 조회수172
보통 교인들은 잘못된 가르침을 더 좋아한다
1. 변질된 복음을 좋아하는 교인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증거인 고린도후서 1장 4절을 통해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 상태를 잘 지적해 주시는 말씀을 보면, 사도들이 전파하지 않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교인들이 잘도 용납하고 받아들인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대체적으로 믿음이 진리 안에서 굳게 서지 못한 교인들이
쉽게 빠져들고 좋아하는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지적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잘도 받아들였다는 사도 바울이 증거하지 않은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이란 거짓된 삯군이나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이 가르치고 증거하는 것들로서
예수를 변질시켜서 소개하고 가르치며 설교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걱정했던 갈라디아 교회에서도 있었던 일인데
바울 선생은 어찌 교인들이 그렇게 쉽게도 다른 복음을 좇을 수 있단 말인가? 하면서
다른 복음은 다름이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켜서 소개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요란케 하는 것이라고 증거 했습니다(갈 1:6-7).
구약시대나 초대 교회 때 그리고 오늘날 보면 공통적으로 거짓된 자나 삯군은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적절히 선포하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의 기대에 맞게 변질시켜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선포와 가르침을 교인들이 대체적으로 좋아하고 쉽게 따르고 빠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메시아를 학수고대하던 유대주의자들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유대 인들은 대개가 예수 그리스도가 오면 자기들이 바라던 시대와 삶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고 있었습니다.
우선 그들은 메시아가 오면 자신들을 로마의 압박에서 또는 정치적 권세에서 놓여나고 자유케 될 줄 믿었습니다.
그것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에언된 메시아에 대한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인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자신들의 불확실하고 어려운 생활이 완전히 해결되는 것으로 바랐으며 지상낙원을 누리게 되는 시대를 메시아가 완전히 성취시켜 줄 줄 알고 믿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메시아 왕국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천국으로 여긴 겁니다.
때문에 그리스도가 오셨지만 유대 인들은 자기의 기대에 맞지 않자 그리스도를 사이비로 몰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지금도 자신들의 기대에 맞는 메시아가 올 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처럼 오늘날 이 땅의 기독교 속에도 그리스도를 사람의 기대에 맞게 변질시킨 다른 복음, 다른 예수가 인기를 끌며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어떤 데서는 그리스도를 인간이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잘되고 만사형통하는 삶을 이루어주는 능력자로, 자신들의 불가능한 일들을 권능으로 이루어주는 만능 해결사로, 부자 방망이로 소개하고 그런 대상으로 믿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이 세상에서 소외받는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 갇힌 자, 천하고 연약한 자의 친구요 이들과 함께하는 위로자로 오신 것처럼 증거하기도 하고,독재자, 권력자, 강한 자 등의 억압에서 건져내 주는 혁명가 혹은 인권주의자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변질시켜 신앙하도록 하는 것들은 누구나 다 원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인들은 예수를 자기들 기대에 잘 맞게 소개하는 잘못된 복음을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미혹의 영을 성령으로 혼돈하고 따르는 교인들
고린도후서 11장 4절에 보면 고린도 교인들이 다른 영에 대한 것은 잘도 받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영을 두 가지로 증거하는데 하나는 성령이고 하나는 거짓 영(악령, 세상의 영)을 말합니다. 오늘날엔 성령의 이름으로 증거되고 일어나는 여러 가지 신비한 현상들을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로 믿고 따르고 그것을 받으려고 애씁니다.
예를 들어 성령의 계시로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들, 그래서 무당이나 점쟁이처럼 어떤 사사로운 일들을 알아맞히고 사람들의 기대와 소원이나 주 관심이 되는 사업이나 가정문제, 자식문제 등을 점치고 하는 것들을 성령의 역사로 본다거나 믿고 따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부흥회나 기도원 집회에서 여러 가지 악기 등으로 흥분시키며 반복적으로 불러대는
광적인 찬양과 강사의 쇼맨 쉽으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일어나는 떨림, 방언의 터짐,
극도의 흥분, 도취상태, 이런 엑스터시같은 것들을 체험하는 것을 성령의 역사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가르치는 자들을 따르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나 열정적인 상태에서 주도해 가며 신비한 상태를 일으키고 병을 낫게 하고 방언하게 하는 자들을 성령의 충만한 능력의 종으로 믿고 신처럼 받들고 맹종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가끔씩 이단, 사이비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을 능욕하고 미혹에 빠뜨리는 교주들을 따라 모여서 하는 집회상태나 교회에서 성령의 이름으로 행하는 광적이고 신비한 체험주의적인 현상들과 별다름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교인들의 감정과 느낌 속에 신비하게 보여지고 뜨겁게 느껴지고 전율되어 오고 놀랍게 체험되어 오면 그것이 성령의 역사요 능력이요 성령 받는 현상이요 성령의 충만처럼 무조건 믿고 따르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매우 큰 것입니다.
이런 일순간적으로 보이는 신비한 현상, 몰입현상, 기적현상, 엑스터시 같은 것은 무당이나
신접한 자, 점쟁이 따위들이 더 많이 보여 주고 있는 것들이며,다른 이방 종교나 기독교 이름으로 날뛰는 사이비들이 주로 보여 주는 현상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요란을 떨고 놀랍게 해보여야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거나그것을 신적인 능력의 현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마지막 때 거짓 선지자들이 기적을 보이어 성도들을 미혹한다고 예고하셨듯이 말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잘도 받았다는 영이 바로 이런 현상으로 사람을 혼란케 하고 미혹게 하는
거짓된 영의 역사였고 오늘날 기독교 안에 들어와 성령의 이름으로 판치면서 어리석고 잘 모르는 교인들을 진리의 성령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미혹하는 일들이 많은 것입니다.
많은 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성령의 역사는 무조건 신비하고 신령한 현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현상의 가르침이나 그런 집회에 많이 참석하고 빠져드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1절에 보면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입니다.
3. 교인들이 왜 잘못된 가르침을 좋아할까?
교인들이 잘못된 가르침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실로 심각한 일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을 통해 잘못된 신앙으로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교인들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오히려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도구로 쓰여지는 참 목회자의 증거를 싫어합니다.
그것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나 신약시대 고린도 교회 같은 자들이나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그렇습니다.
아모스 5장 10절에 보면,
무리가 자기를 바르게 책망하는 자를 싫어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은 마지막 시대일수록 더 심해진다고 예고했는데 디모데후서 4장 3-4절에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소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바로 가르치는 바울 같은 참된 목자보다 변질된 복음으로 잘못된 신앙을 가르치는 거짓된 자나 삯군들이나 인본주의자 들이 더 인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교인들이 잘못된 가르침을 더 좋아할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복음에 합당한 바른 가르침을 따르며 좋아할 수 있을까요?
사람에게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게 되는 인간의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의 죄의 옛 근성들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이는 세상이 좋고 내 본성에 내 인간 중심에 맞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이용하여 세상에서 자기 소원을 이루게 하고, 얻게 한다는 가르침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이며 반대로 그런 자기 소욕을 부인하게 하고 하나님께 굴복게 하고 세상보다,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며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는 올바른 구원의 가르침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듯이 사람들의 행위가 악함으로 빛보다 악을 더 사랑하며 빛으로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그 누구도 진리의 가르침 앞에 자진해서 나올 수 없으며 우리가 좋아서 따르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혹하게 하고 우리가 좋아하게끔 맞춘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잘못된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가르침보다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을 더 인정하고 따랐으며 갈라디아 교회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사도 바울의 참된 복음의 가르침보다 복음을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변질시킨 잘못된 가르침을 더 좋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어 중생한 자도 잘 넘어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육체의 소욕이 살아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좋아하지도 않는 복음에 합당한 가르침을 따를 수 있는 걸까요?
그것은 오직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은혜의 역사 속에 있는 것입니다.
마치 다른 복음을 좋아했던 고린도 교인들이었으나 결국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받게 하심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유대 인은 기적을 원하고 헬라 인은 지혜를 구하나 나는 십자가의 도만 증거하니 헬라 인이든 유대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인도받아 자꾸 깨달아 나가면서 눈을 좀 밝게 떠야 참 진리의 바른 가르침을 분별하고 기뻐하며 더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잘못된 가르침을 좋아하면서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올바른 복음의 가르침 앞으로 끌려 나오게 되는 것인데 그 은혜는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은교회, 황부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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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진정한 복음보다는
기복주의, 성공주의, 신비주의에 깊게 중독되어 있기에
오히려 올바른 복음이 인기가 없고 배척당하기 까지 하는 현실입니다.
인공조미료, 가공식품 등 불량식품에 입맛이 들어 있어 건강의 적신호가 온 사람이
건강식품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이제는 영적건강을 위해 바른복음으로 되돌아가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