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이라는 말은 조직폭력배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진다. 물론 조폭들만이 쓰는 용어는 아니지만, 협박이라는 말만 들어도 조폭을 먼저 연상하게 되는 까닭은 조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인 것 같다. 보통의 선량한 시민이라면 협박당하는 일은 혹 있어도 누군가를 협박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목회자가 신자를 협박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목회자는 보통의 선량한 시민보다 그나마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자를 협박하는 목회자가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목회자가 신자를 협박하는 유형은 다양하다. 가장 많은 형태가 헌금하도록 협박하는 것이다. 특히 십일조 헌금을 협박조로 가르친다. 신자가 물질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십일조를 떼먹기 때문이라며, 온전한 십일조를 어떤 형편에서도 반드시 하라고 가르친다. 십일조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십일조를 온전하게 바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치는 목회자들도 있다. 이쯤 되면 조폭이 사용하는 협박을 능가한다. 그래서 어떤 신자는 빚더미에 앉았는데도 빚을 내서 십일조를 바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목회자는 주의 종을 비판하면 저주받는다고 신자들에게 가르친다. 그래서 목회자의 설교에 대해 어떤 불만도 말하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는다. 목회자가 정상적인 설교를 하는 데도 신자가 비판하는 것이라면 동의할 수는 없다. 어느 목회자는 설교 시간에 정치 선동을 일삼기도 하고 야한 농담도 자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신자는 당연히 이런 설교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고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마치 이런 신자를 하나님이 저주한다는 식으로 설교 중에 말한다면 협박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목회자는 헌금 횡령이나 여성도와 부적절한 관계가 탄로 나서 교회가 술렁일 때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도 하나님이 세운 주의 종을 비판하면 하나님께 저주받는다는 식으로 협박을 일삼는다. 하나님이 세운 종이기 때문에 심판하더라도 하나님이 하실 것이니 신자는 가만히 있으라며 입을 막으려고 하지만, 이 또한 협박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목회자가 막장으로 가고 있는데 신자가 구경만 하고 있다면 오히려 그 목회자를 더 깊은 수렁에 빠지도록 방조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결국 공동체가 큰 타격을 입기에 신자가 나서야 맞는 것이다.
어떤 목회자는 병든 신자에게 협박해서 금품을 뜯는다. 어떤 나이 많은 권사가 병이 발생하여 목회자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그런데 이 병에서 나으려면 하나님이 감동할 만큼 큰 액수의 헌금을 바치라고 하나님이 계시해 주었다며 종용했다. 그래서 수천만 원의 거액을 바쳤다. 그런데도 낫지 않자 계속 헌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결국 집 한 채 값을 다 날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병이 낫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목회자가 금품을 뜯어가는 것도 고단수의 협박에 해당한다. 하나님은 돈을 받고 병을 고쳐주시는 분이 아니다.
어떤 목회자는 교회를 떠나는 신자를 막아보려고 우리 교회 떠난 신자치고 잘 된 사람이 없다고 신자들에게 가스라이팅을 한다. 이 또한 협박이 아니고 무엇이라는 말인가? 신자가 한 교회를 성실하게 평생 잘 섬기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로 교회를 더 다닐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다니던 교회를 떠나 더 좋은 교회를 찾아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벌을 주거나 저주하지 않으신다.
참 교회라면 어느 교회나 주님의 몸으로 하나의 교회이다.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를 다녀야 복을 받고 다른 교회를 가면 복을 받지 못한다는 말은 협박에 해당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로 말하면 협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새누리교회 담임



[ 들소리신문 ] 신자를 협박하는 목회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