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가 뜨겁다고 소문난 교회들이 있다. 또는 찬양과 기도가 뜨겁다고 알려진 각종 집회도 많다. 이런 예배나 집회의 특징은 대부분 타악기를 비롯하여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악기를 사용하면 악기 소리가 장내를 압도하기 때문에 마음이 차분할 수 없고 감정이 고조되기가 십상이다. 이 상태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면 악기 소리와 합쳐져 열광의 도가니가 된다. 대부분은 이와 같은 상황이 조성될 때 영적으로 뜨겁다고 말한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뜨겁다고 하면 유명 아이돌 가수 콘서트장에서 볼 수 있는 열기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예배 중에 유명 가수의 공연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나서 예배가 뜨겁다는 말과 함께 성령이 충만한 현상이라는 표현을 곧잘 한다. 이것은 참석자들의 감정이 흥분된 상태이지 성령의 충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성령이 충만하여 뜨거워지는 현상은 이렇지 않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성령이 충만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경이 말하는 뜨거움은 교회에서 흔히 말하는 뜨거움과 전혀 다르다. 성경에서 진리의 복음을 깨닫게 될 때 마음이 뜨거워진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구약 성경에 계시한 그리스도를 설명해 주실 때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게 이를 말한다(눅24:32).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성경을 배우면서 전에 몰랐던 복음을 깨닫고 마음이 뜨겁게 된 것이다. 이러한 뜨거움이 진짜 뜨거움이다. 그런데 진리의 복음은 선포하지 않고 귀가 먹먹할 정도의 악기 소리와 찬양과 기도만 있는데 어떻게 복음을 깨닫게 되겠는가?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의 뜨거움은 세상 가수들 공연장의 뜨거움과 일반이다.
이런 점에서 예배나 찬양 집회, 기도가 뜨겁다는 교회의 실상을 냉철하게 살펴보면 그 뜨거움이 얼마나 허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신자가 허구적인 뜨거움에 속고 있다. 그런데도 속고 있다는 자각을 못 하고 마약 중독자가 약의 기운이 떨어지면 마약을 또 찾듯이 정기적으로 이러한 집회에 참석한다. 이러한 신자는 차분하게 성경의 말씀을 아무리 잘 가르쳐도 찬양과 기도가 열광적이지 않으면 냉랭하여 은혜가 안 된다고 말한다. 또는 영적이지 않다는 표현까지 서슴없이 사용하여 영적이라는 개념마저 왜곡한다. 이러한 신자는 무엇이 영적인지를 크게 오해한 것이다.
어떤 상태가 영적이냐에 대해서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다른 견해를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감정이 자극되어 찬양과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찬양과 기도를 뜨겁게 해도 복음의 말씀이 빠진 상태라면 영적이라고 할 수 없다. 복음의 말씀은 없고 무조건 소리 높여 찬양하고 기도하라고 부추기는 현장이라면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뜨겁다며 영적인 집회라고 말하는 장소에 가보면 참 복음을 선포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영적이라는 말을 쉽게 한다.
마음이 허해서인지 예배에서 가수들 공연장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하는 신자가 많다. 그래서인지, 이 방향으로 몰고 가는 목회자도 적지 않다. 이런 실상은 교회 성장에 대한 압박에서 오는 현상일 수 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해서라도 신자들의 허한 마음을 채워서 열심 내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목회자이든 신자이든 허한 마음은 공연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 공연이 세상 공연이건 교회에서 하는 공연이건 말이다. 오직 복음의 진리를 듣고 깨닫게 되어 믿음이 될 때 마음의 허기가 사라지고 뜨거워진다. 이런 뜨거움이 에너지가 될 때 신자들이 역동적으로 되어 진정한 교회 성장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