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교회와 경쟁이라도 하듯 직분 자를 양산하는 교회가 많다. 대부분 교회가 직분 자에게 하나님께 충성, 봉사 잘하면 자신은 물론 자손 천대까지 복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임직 행사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축사나 권면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당대에 복을 받지 못하면 자손 대대로 복을 받을 것이니 안심하라는 듯이 충성을 종용하기조차 한다.
이렇게 강조할 때면 대부분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라는 말씀을 근거로 제시한다. 교회 좀 다닌 신자라면 귀에 익은 말씀일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물질로 헌신하고 충성, 봉사하라는 뜻으로 이해하여 적용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자손 천대까지를 문자대로 해석하여 선동하는 목회자들도 있지만, 그렇게 이용할 성질의 말씀이 아니다.
여기서 “사랑한다”는 히브리어 “아하브(aw-hab)”라는 동사인데, 다양한 사랑의 의미로 쓰는 용어이다. 그중 남녀의 성적 관계를 말할 때도 사용한다. 그래서 부부의 연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은 단순히 ‘사랑합니다’라는 고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사랑은 하나님과의 연합에서 나온다.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의 사랑이다. 이러한 사람 안에는 그리스도가 사신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사는 사람이다. 이렇게 사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이 계명을 다 지키지 못해도 계명을 지키는 사람으로 간주하신다.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라고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킨다는 것을 이 같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본질은 계명대로 온전한 십일조하고 충성, 봉사하는 일이 아니라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말이다.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는 말씀을 이런 시각으로 읽어야 한다. “천대까지”란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그냥 ‘천(千)’이라는 뜻이다. 자손 천 대라는 뜻이 아니다. 이 점에서 흠정역 한글 버전은 “천대”를 “수천의 사람들”로 번역했는데, 원문에 충실한 번역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는 말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숫자 천을 뜻하는 히브리어 “엘레프(eh-lef)”라는 단어는 넘치거나 초과하는 것을 나타낼 때 쓴다. 따라서 하나님 은혜가 무한하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좋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다. “베푸느니라”로 번역한 히브리어 “아사(aw-saw)”는 ‘창조하다’ ‘일하다’ ‘행하다’라는 뜻이 있다. 하나님이 무한하신 은혜로 행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한한 은혜를 누리는 게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킨다는 이유로 자손 천대까지 복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 자식도, 그 자식의 자식도 각각 그리스도를 믿고 연합한 자가 될 때 영원한 은혜(복)를 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