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보이는 것, 무엇인가?
사람과 동물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 같은 점도 있지만 사람과 동물은 확연히 차이가 있다. 그 중에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는 ‘생각’이라는 것이 아닐까? 제비집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21세기가 되었어도 까치집은 똑 같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새로운 형태로 만들지 않는다. 개미들이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도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은 어떤 문제를 만나도 생각을 못한다. 똑 같은 방식만 고집한다.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다르다. 생각이 진화된다. 특히 문제에 직면하면 깊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생각한 대로 문제에 접근하고 풀어간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생각에 영향을 주는 요소이다.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무엇이 보이느냐에 따라서 생각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다. 무엇이 보이느냐이다. “무엇을 보느냐”는 사건이나 문제 자체를 보는 것이다. “무엇이 보이느냐”는 사건이나 문제 뒤의 또 다른 어떤 것을 보는 것이다.
옛날 어느 신발 만드는 회사에서 아프리카에 신발을 수출할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시장 조사를 위해 영업사원 두 사람을 보냈다. 이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보니 대다수가 신발을 신지 않고 다녔다. 이를 본 한 사람은 이곳에서는 신발 팔기가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본사에 이곳 사람들은 신발을 신지 않기 때문에 시장성이 없다고 보고 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신발을 신지 않으니 황금 시장이 될 것이라고 보고 했다. 대다수가 신발을 신지 않으니 신발을 신게 한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했다.
같은 상황을 보았지만 이렇게 생각의 차이가 컸다. 때문에 무엇을 보느냐보다 ‘무엇이 보이는가’가 중요하다. 무엇이 보이는가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그런데 무엇이 보이려면 앞을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사업을 해도 잘하고,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일반적 통찰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다. 하나님이 눈에 보여야 한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면 현상만 보이지 않고 현상 그 너머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새해에는 이런 눈이 열려 두려움과 염려 없이 살아보자. <오세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