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가브리엘 10.10.13 조회수 800
삼일교회는 어떤교회인가?
저는 삼일교회 전병욱목사에 대하여 매우 긍적적인 평가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직접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인지한 내용만으로는
젊은이로 가득찬 삼일교회는 한국교회의 희망이고
전병욱목사야말로 한국교회를 바르게 이끌어나갈
순수하고 열정적인 차세대 지도자의 한사람이라고 느껴왔습니다.
최근 전병욱목사에 대한 성추문 소문이 인터넷매체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전목사가 일단 성추행을 시인했고,
당회에서는 3개월 설교중지, 6개월 수찬정지의 징계를 내렸답니다.
사이버상에서는 정죄하여야 하느냐? 용서하고 강단에 세워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몹시 시끄럽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성추문과는 별도로 전병욱목사에 대한
사역의 재평가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러 자료를 검색하고 확인한 결과,
과거부터 일부의 비판이 있어 왔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평가는 전병욱 목사의 설교 메세지는 성경적, 복음적이 아니며
일부 성공하였거나 성공을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엘리트의식을 부추기면서
이 세상에서 자아실현의 욕망을 실현하는
인본주의, 성공지상주의가 가미된 변질된 복음이라고 평가됩니다.
삼일교회 교인들의 정서는 전병욱목사를 감싸기 바쁩니다.
내부의 반발이나 실망은 거의 없습니다.
용감하게 아래 글을 기고한 분이 한분 있기는 하지만...
대응하는 말속에서 교인들의 신앙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sk교회의 신앙정체성과 별반 다른게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강한 개혁교회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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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글] 삼성, 그리고 삼일교회와 전병욱을 생각한다|♣ 。교회개혁방
루크 스카이워커 | 조회 964 | 2010.10.12. 00:35
요사이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러다 문득 제 책상 책꽂이에 걸린 삼성을 생각한다가 눈에 보였습니다.
삼성과 삼일교회, 묘한 접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전 김용철 변호사에 비하면 티끌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요사이 많이 힘들다.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나 다음에 있는 내 블로그, 그리고 내 트위터에 들어가기도 겁난다.
뒷감당도 못할거면서 나는 왜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을까?
내 책 꽂이에는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가 꽂혀있다.
하나 건너에는 전병욱 목사의 책이다. 참 우연이다. 갑자기 울컥한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리를 폭로했을 때, 사실 난 김 변호사를 손가락질했다.
검사로, 변호사로, 삼성의 법조자문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다가
수틀리니까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폭로한 것으로 밖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뉴스를 통해, 아니면 삼성에 취업한 선배, 혹은 친구들을 통해
삼성의 가공할 실체를 조금씩 접하게 됐다.
내가 참 치기로 가득했구나 하는 반성과 함께 김용철 변호사를 차차 이해하게 됐다.
그러다가 올해 4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었다.
말로만 듣던 삼성의 실체가 낱낱히 드러나 있었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지금 나는 줄곧 삼일교회의 전병욱 목사를 성토하고 있다. 개인적인 감정이어서가 아니다.
지난 3년간 그를 무척 존경했다. 내가 삼일교회의 성도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삼일교회에서 몇 가지 일을 맡기도 했고 이 일을 잘 소화하려 했다.
생전 안나가던 새벽기도를 다 나갔다. 밤잠 설쳐가며 전병욱 목사의 안수기도를 받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성추행 의혹이 일었을 때, 아차 하면서도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성추행 의혹 사건을 접하고 그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드러나는
그와 삼일교회의 실체는 흉물스럽기 그지 없다.
나 자신 삼일교회를 섬기며 열심히는 아니었지만 몇몇 허드레 일을 맡아봤기에
삼일교회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시스템들이 전 목사를 방어하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
소름이 끼친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히 뛰어 다녔다.
이러자 삼일교회에서 나의 움직임을 눈치챘다.
누군가가 트위터에 올린 내 멘션을 보고 부교역자들에게 세세한 내용까지 전달했을 정도였다.
부목사들이 이틀에 걸쳐 사실확인을 해왔다. 그때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나 하나 죽이는 일쯤은 거리낌 없이 해댈 것 같았다. 나를 과대망상이라고 해도 좋다.
그렇지만 이때 느낀 공포감은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쳐진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의 모든 것을 걸고라도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의혹을 밝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지난 3년 동안 만났던, 내 동생과도 같은 젊은 성도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젊고 예쁘고 멋지고 순수한 신앙의 열정을 가진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젊은 이들이었다.
이 젊은 성도들이 혹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날뛴다고 달라지는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용철 변호사가 떠올랐다.
그가 삼성이라는 가공할 실체와 맞서 싸우기로 했을 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으며
얼마나 무서움에 치를 떨었을까?
김용철 변호사를 손가락질 했던 내가 그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김용철 변호사이지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무척 괴롭다. 그도 얼마나 괴로웠을까? 무섭다.
삼일교회보다 더 큰 삼성과 싸우던 김용철 변호사는 얼마나 가공할 공포에 시달렸을까?
그러나 젊고 순수한 성도들을 봐서라도 굽히지 말아야 하겠다. 선교준비하면서, 아니면
어떤 태스크포스 팀을 맡으면서 그렇게 열심으로 일하는 젊은 성도들을 난 본 적이 없다.
삼일교회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은 교회로부터 한 푼의 지원도 받지 않는다. 그게 교회정책이란다.
매년 여름과 겨울에 있는 선교 준비하면서 선교준비하는 젊은 성도들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쳐 일한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교회는 그 어떤 후원도 제공하지 않는다.
후원 이야기를 꺼내면 담당 부교역자가 설교시간을 통해 후원 이야기를 꺼낸 성도들을 책망할 정도다.
그렇지만 모든 영광은 전병욱 목사 차지다.
결과적으로 젊은이들의 순수한 신앙열정을 착취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것도 모자라 여성도를 범하려 한 전 목사의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동생과도 같은 젊은이들이 그의 세과시에 동원되는 광경을 떠올려보면 서글퍼질 정도다.
어느때부터인가 이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메리암의 저주를 내려달라고. 메리암은 모세를 비난하다가
여호와의 진노를 사 한센병에 걸렸다.
메리암의 저주는 목회자들이 신도들의 비판여론을 잠재우는 전가의 보도이기도 하다.
내가 잘못됐다면, 그래서 이 시대의 영웅(?) 전병욱 목사에 대한 비판이 잘못됐다면
난 여호와의 징벌을 기꺼이 받으려 한다. 나 자신 연약한 존재이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앞선다.
그렇지만 지금 난 공의의 하나님 앞에 당신의 징벌을 달게 받을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한다.
전병욱 목사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적었었다.
"성도는 세상과 다르다. 세상과는 전혀 다른 행동으로 살아간다".
- 도전정신 중에서
그러나 지금 전 목사가 보이는 행태는 세상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아니 세상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성도들에겐 세상과 다르게 살라면서 자신은 세상보다 더 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이 시대의 목회자로
추앙 받는단 말인가? 어림 없는 소리. 진실은 자명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진실은 자명하지 않다. 진실은 파헤치는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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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순종이라는 미명아래, 꿀먹은 벙어리가 된 자들|
하아지(112.XXX.XXX.234) 목사님의 글입니다.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373
두번 다시 그의 글도 읽고 싶지 않습니다.
설교에 인용하고
그의 책을 스터디한 것이
성도들 앞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교회 서재에 꽂힌 이십여권의 전목사 책을 누군가가 돌려꽂았습니다.
책 등이 보이지 않도록...
그분의 배려에 고마울 따름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산다는 것이
그 잘난 머리나 화려한 세치 혀로 되지 않는다는 말만을
성도들 앞에서 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성경이나 이미 죽은 자의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추접한 몸으로 강단에 선 것도 생각할 수록 부끄럽지만,
그의 반응과 몇몇 정신나간 목사들의 수습태도가 구역질이 납니다.
(범죄가 드러나면) 목사들끼리 서로 봐달라는 것인가요?
보험드는 것인가요?
어디까지 얼마나 추해졌는지 모르지만,
왠만했으면 억울하다고 거품물었을 양반이 조용한 걸 보니,
그냥 성추행수준은 아닌 듯합니다.
그가 도덕성와 기독교 윤리에 오물을 끼얹었으니
더 이상 한국교회에서 그가 할 일은 없습니다.
한국을 떠나고 죽을때까지 딴 곳에서 정말 쥐죽은듯이 사십시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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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ㅡ 이러지 맙시다.
평신도들이 마치 자신이 죄가운데 빠진 저 목회자를 지키는 매가처치 목사의
대변인이 되는 일은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저들은 마치 종교적인 자신들의 명예와 부와 권력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성경에서 혹은 교회공동체에서 끌어대느라 혈안이 되어있네요.
결국 공의와 사랑이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공의와 사랑을 떼어놓는 격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징계도 사랑이라는 진정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자기들끼리 살아남으려는 참 구차한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네요.
삼일교회가 용서했으면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그렇게 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한 삼일교회의 교인은
어디에서건 그 결정에 대한 십자가를 지고 다니셔야 할 겁니다.
세상 눈치를 왜보냐고 반문하시겠습니까?
그대들로 인해서 한국교회는 기독교윤리의 저급함과
교회끼리의 파당과 살려주기 식의 추잡함에 대한 부담을 안고
전도를 하고 사역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삼일교회가 시골의 작은 교회와 비교해서 큰 영향력이 있다는 정신없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이미 그 양반의 책들은 헌책방에 넘기기도 부끄러워 다 폐기했습니다.
생각만해도 그로 인해 떨어지 영혼들이 안타깝습니다.
그 추악한 짓을 하고도 강단에 올라 청년들이 들으면서
자책하고 열등감을 자극했던 설교들이
사실은 독설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성도들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왜 남의 일인데 자기일 처럼 말하냐구요?
그럼 당신이 그동안 전목사를 인용하고 책을 소개하고 스터디를 했던
수많은 목사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보상을 해줄 수 있습니까?
만약에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과거 구교가 저질렀던 하나님 진노할 방법으로
마무리가 된다면...
더 이상 이 일을 추진하고 힘을 보탠 목사들을 하나님의 대언자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거야 내 맘이죠.
제발 개신교만이라도 하나님의 공의에 기대어 세상 필부들이 보더라도
"역시 예수믿는 사람은 윤리적으로 믿을만 해"라는 자정 기능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