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 없이 화가 나는 이유
어린아이가 A가게의 햄버거가 아닌 B가게의 햄버거를 먹겠다고 떼를 쓰면 어른은 다 똑 같은 햄버거라고 하며 쥐어박고 싶다. 그리고 사실 어느 쪽이든 그리 큰 차이는 없다. 분명 어느 것을 먹어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는 말에는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 숨어있다. A가게의 햄버거를 먹게 하면 아이는 짜증을 내거나 한바탕 소란을 피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른은 그런 사소한 일로 화내는 일이 거의 없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화를 내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문 여는 것이 재미있어 보여 혼자 힘으로 문을 열어 보려고 한다. 그러나 문 쪽으로 다가가는 순간 다른 사람이 아이를 홱 지나쳐 문을 연다. 이때 아이가 문을 열고 싶어 했던 것은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는 벌컥 화를 낸다. 문을 연 사람이 엄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이해할 줄 아는 부모라면 아이에게 “미안하구나, 정말 몰랐어, 다음 번엔 꼭 네가 열개 해줄게”라고 달랠 것이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부모는 아이가 짜증을 냈다는 사실 자체에 화를 낸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는 ‘누가 열든 마찬가지’라는 어른의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열려고 한 문을 자기가 여느냐 남이 여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어른은 그 정도 일로 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 창피해서 화를 내지 않는다기보다 자신이 그까짓 일로 화를 낼 리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은 절대 화낼 리 없는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 화를 내면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서른 살이나 된 자신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에 화를 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런 바보 같은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 중 대다수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정서적으로도 성숙하지 못하다. 아무리 왕성한 사회생활을 하고 육체적으로 나이를 먹었어도 심리 상태는 다섯 살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자신을 깨닫지 못한다. <가토 다이조(加藤諦三), 이인애, 박은정 역, 「나는 왜 눈치를 보는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