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책망
“따뜻한 마음, 따뜻한 공동체”는 새해 표어다. 이 표어를 정하면서 살짝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면 “책망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이었다. 사실 교회에서 누가 누구를 책망할 수 있겠는가? 교인을 책망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누군가를 책망할 만큼 의롭거나 온전하지 않다.
문제는 설교 중에 책망의 말씀이 나올 때이다. 설교에서 나타나는 책망을 어떻게 봐야 할까? 목회자가 설교시간에 사사롭게 야단을 치거나 훈계하는 것은 설교가 아니다.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자가 설교자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전달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야단을 쳤다면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설교를 듣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줘도 목사가 책망했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책망하는 말씀도 많기 때문이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한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예리한 칼과 같아서 양심을 찌르기도 하고 고통을 주기도 한다. 책망으로 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을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할 수 있다. 물론 양심에 부딪힐 것이 없으면 이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혹은 화인 맞은 양심으로 양심이 굳어지면 어떤 말씀을 들어도 감각이 없다. 같은 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말씀이 선포될 때 놀라운 현상이 있다. 어떤 사람은 책망으로 듣고 고통스러워하거나 화가 나고 시험에 들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같은 말씀인데 위로의 말씀으로 듣는다는 것이다. 위로의 말씀으로 들리는 것도 은혜지만 책망의 말씀으로 들리는 것 또한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면 책망을 하실까? 책망의 말씀이 들릴 때 반발할 것이 아니라 약으로 받아들이며 문제에서 돌이킬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변화가 아니고 무엇일까? 공동체를 따뜻하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오세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