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 법 (The Good Samaritan Law)
예전에 읽었던 어느 외신 기사에는 놀라운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미국의
한 TV 방송국에서 행한 실험이었는데 뉴욕의 번화한 거리에 있는 가로등 기둥에
한 여성을 묶어 놓고 행인들의 반응을 조사한 것이었다. 그 기사의 내용에 의하면
대부분의 행인들은 그 여성이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냥 지나가버렸다고 한다. 게다가 수시간만에 그녀에게 말을 건넨 사람이 있
었는데 그 사람 역시 그녀에게 몇마디 말을 건네고는 그냥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
여자가 친절한 사람에 의해서 구출된 것은 무려 아홉 시간이 지난 후였다고 한다.
그 외신 기사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기독교인이라면
누구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누가 참 이웃인가를 말해주는 신약성서의 <선한 사
마리아 사람>을 마음 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주변에서는 크고 작
은 참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때마다 위험과 곤궁에 처한 사람들이 생
겨나고 있다. 그런데 참사의 현장에 있으면서도 위험에 빠진 사람을 외면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세월호 참사일 것이다.
그러한 일과 관련해서 <선한 사마리아인 법 The Good Samaritan Law>이라
는 것이 있다. 물론 그 명칭은 그 법의 정식 명칭은 아니다. 그 법은 강도를 당하고
매를 맞아 길에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보고 당시 사회 상류층이며 지도층이었던 제
사장과 레위인은 모두 그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쳤으나 유대인과 적대 관계인 사마
리아 사람이 구해 주었다는 <신약성서>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명칭이다.(누가복음
10:30~35).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그 이야기 속의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은 행위를 <구조거
부죄> 또는 <불구조죄>로 처벌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자기 또는 제 3자의 위험
을 초래하지 않고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구
조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 5년 이하의 구금 및 50만 프랑의 벌금에 처한다 (신형법
223-6조 2항). 또 폴란드에서도 개인적인 위험에 닥쳐 본인 또는 본인과 가까운
사람들을 노출시키지 않고 구조할 수 있는데도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사람
을 구조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 3년 이하의 금고나 징역에 처한다 (247조). 이밖에
독일·포르투갈·스위스·네덜란드·이탈리아·노르웨이·덴마크·벨기에·러시아·루마니아·
헝가리·중국도 구조거부행위를 처벌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선한 사마리아
인 법, 곧 불구조죄가 없다.
물론 곤경에 처한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도덕적, 윤리
적인 문제이다. 그러기에 그런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각개인의 자율성을 존중
해야 하며 법이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법은 최소
한의 도덕>이라는 말이 있듯이 법으로나마 최소한의 도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
는 사람 또한 얼마든지 있다.
한편,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회는 어떤가? 우리나라 교회는 곤궁에 처한 사람들
에게 참 이웃이 되고 있을까? 우리 새누리 교회는 누군가의 참 이웃이 되고 있을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