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저명한 신학자 중 한 명인 기타모리 가조(北森嘉蔵)의 저서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神の痛みの神学)」이라는 책이 있다. 고작 서른의 나이에 쓴 책이지만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아픔을 설파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아픔을 느끼신다는 것이다. 아파하시는 하나님께서 용서와 사랑으로 공의와 구원을 완성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픔은 하나님의 슬픔이란 말과 일맥상통한다. 아픈 마음의 표출이 슬픔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음의 슬픔은 마음의 아픔을 동반한다.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을 보시는 하나님은 아파하시고 슬퍼하신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출한 것으로 이 시대의 죄악상을 보는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해야 할 심정이기도 하다. 죄가 관영 함을 보면서 죄인을 비난하고 정죄하기보다는 이 마음이 필요하다. 변화될 것 같지 않은 악인들을 보면서 품어야 할 마음이다.
죄인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려면 사랑의 마음과 은혜로운 마음이 요구된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마음이 이런 마음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마음이 없으면 악인들을 보고 비난하고 정죄하기에 급급할 것이다. 사실 누구를 비난하고 정죄할 만큼 당당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우심 때문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비난과 정죄가 난무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교회 공동체에서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기도 하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대신 저마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심판하려 든다. 죄인을 보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전 일까지 들춰내면서 비난을 퍼붓는다. 이 때문에 죄인이 발을 붙일 수 없게 만들어 죄인을 구원할 수 없는 교회가 된다. 구원의 방주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는 하는데 착한 사람만 구원받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탄핵 정국에 보수 우파니, 진보 좌파니 하면서 광장에 나와 서로 험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다. 서로를 향해 정죄하는 말이 살벌하기 그지없다. 서로 자기들 편에 서지 않으면 나라를 위험에 빠트리는 악인으로 몰아간다. 우파는 좌파를 향해 나라를 공산화하려는 자들의 동조 세력이라고 하고, 좌파는 우파를 향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파시즘이라고 맹비난을 퍼붓는다. 비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만 오가는 말이 아니라 자칭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들이 보여주는 행태이다.
이렇게 양극단에 치우쳐 서로를 공격하며 정죄하는 이들이 과연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진리의 복음이 마음에 있다면 서로를 악마화하여 미움과 증오를 뿜어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자리에 오시면 어느 진영에 서서 편을 들어주실까? 아마도 서로 우리 편에 예수님이 서실 것이라고 아전인수로 합리화할지 모르나, 그렇다면 큰 오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양 진영의 주장을 들어보면 자신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다는 식으로 강변한다.
대부분 교회에는 우파나 좌파 그리스도인이 섞여 있다. 교회라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어느 교인이 우파인지 좌파인지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말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마음으로는 서로 적대시하고 미워하며 배척할 게 아닌가? 이렇게 신자들이 두 마음이 되어 예배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부모 앞에서 자식들이 서로 미워하며 싸움질할 때 그 부모 마음이 어떨지는 불문가지다. 신자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한다. 그러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서로 정죄하며 비난하지 말자. 하나님이 슬퍼하시지 않도록 말이다.
오세준 목사
새누리교회 담임출처 : 복음인(https://www.ingn.net)



[ 들소리신문 ] 우파 좌파를 보시고 슬퍼하시는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