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교회 담임
한국 교회 안에 예언 기도하며 교인들을 미혹하는 무리가 적지 않다. 주로 우환 질고에 시달리는 교인들이 이들의 미혹에 쉽게 빠져들기도 한다. 이런 교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예언 기도하는 이들은 과거의 일을 집어내면서 미래를 점치듯이 알려주니 교인들이 혹할만하다. 그래서 점 잘 치는 무당에게 사람들이 몰려가듯이 예언 기도 잘한다고 소문나면 기도 받으려는 교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러면 성경에 예언 기도라는 게 있을까? 예언과 기도는 성격이 다르다. 성경에는 기도와 예언이 분리하여 나타난다(고전11:4~5). 신약에서 예언은 은사 중 하나이다(고전12:10). 이렇다 보니 예언의 은사를 대단히 소중하게 여기고 강조하는 이들이 많다. 초대교회에는 예언의 은사를 받아 예언 사역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하는 예언 기도와는 전혀 다르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언 기도가 아니라 예언의 말씀을 했다. 그리고 공적으로 했으며 공동체에서 분별해야 했다(고전14:29).
그런데 많은 경우 한국 교회에서 예언 기도는 사적이다. 그 예언이 맞는지, 틀리는지 분별하는 사람도 없다. 그야말로 일방적이다. 검증하는 사람도, 검증할 사람도 없다. 아니 누가 검증하겠다고 나서도 검증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검증하겠다고 하면 자신이 하는 예언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며 불쾌감을 드러낼 것이고, 성령을 훼방하는 죄라면서 검증하겠다는 사람을 향해 사탄이라고 할 판이다. 그러니 이들을 제재하거나 막을 재간이 없다. 교인들이 분별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날 횡행하는 예언 기도가 성경적으로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아야 한다. 예언은 성경이 정경으로 완성되기 전까지 필요했다. 이때까지는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의 말씀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선지자나 사도를 통해 또는 예언 은사 받은 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지금은 예언의 말씀인 성경이 완성되어서 또 다른 예언이 필요 없다. 성경 66권은 예언의 말씀이며 그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지금도 하나님이 직통 계시를 통해 예언의 말씀을 주신다면 어떤 혼란이 올까? 대표적으로 혼란을 준 사건을 하나 꼽는다면 다미선교회가 주장한 1992년도 휴거 대소동이다.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난다는 예언을 믿고 따른 교인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는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휴거 소동 같은 대형 사고까지는 아니라도 예언 기도하는 자들로 인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타격받아 고통당하는 교인들이 있다. 이 같은 유형뿐만 아니라 부부가 이혼하고 가정이 파탄되는 등의 피해 사례도 다양하다.
한번은 필자에게 어느 여 집사가 두려워하며 고충을 털어놨다. 이 여집사에게는 늦둥이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어떤 권사가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며 선교비로 오백만 원을 입금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늦둥이 아들을 하나님이 데려간다고 했다며 불안해했다. 그러나 일 원 한 푼도 보내지 말라면서 안심을 시킨 적이 있다. 늦둥이 아들에게 아무 일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하나의 사례만 들었지만 이와 유사한 경우가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횡행하는 예언 기도는 성경적이지 않다. 좋은 예언이든 나쁜 예언이든 예언 기도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예언을 통해 금품을 요구하시는 조잡한 신이 아니다. 예언을 빌미로 금품을 요구하는 것은 무당이나 이방 잡신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자격이 없음에도 모든 것을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돈을 받고 화를 면케 해 주거나 복을 주는 하나님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