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걸림돌인가, 세상이 걸림돌인가?
목회자칼럼 2021-04-12
오세준 목사
우리나라의 도로는 거의 다 포장이 잘 되어 있다. 그러나 과거 90년대까지만 해도 비포장도로가 꽤 많았다. 이런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면 차가 흔들려 참 불편하다. 걷는 사람은 더 불편을 느낀다. 울퉁불퉁한 길을 걷다가 자칫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행자가 길을 걸을 때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걸림돌’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걸림돌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걸림돌도 있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보이지 않는 걸림돌이 존재한다. 특히 걸림돌이 없을 것 같은 교회에 의외로 많다. 교회에서 누군가가 교인을 시험에 들게 하거나 넘어지게 할 때, 걸림돌이 되었다고 말한다. 걸림돌에 넘어진 교인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아예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가나안 교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그중의 한 부류일 것이다.
교인으로서 잘못된 언행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런 걸림돌이 교회 안에서의 문제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심각한 것은 교인이 세상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는 경우이다. 다르게 말하면 교회가 세상의 걸림돌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전도의 문이 막히고 구원받게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
세상이 교회를 박해하면 교회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정부가 예배 인원을 제한하고 통제를 한다. 그러자 일부 교회와 목회자이긴 하지만,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교회 탄압이라면서 맞섰다. 이런 경우 정부나 세상이 교회가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라고 볼 것이다. 정부의 지나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교회의 대처가 대중의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지탄을 받았다. 게다가 교회의 불신을 넘어 혐오 집단으로까지 매도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코로나19의 위기관리를 교회가 지혜롭게 못 하여 교회가 세상의 걸림돌이 되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잖아도 한국교회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는데,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전략의 실패로 교회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악화되었다. 꼭 이런 결과에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코로나19 이후로 청년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아픈 현상은 교회가 걸림돌이 되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교인은 세상이 교회를 박해하면, 이것이 복음의 걸림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성경은 세상의 박해를 복음의 걸림돌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박해로 인해 교회는 더욱 온전하게 되고 강하게 되며 터가 견고해지기 때문이다(벧전5:10). 초대교회가 얼마나 많은 박해로 고통을 당했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복음 전파가 왕성했고, 이때 구원받고 주께로 돌아온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박해하는 세상이 복음의 걸림돌인 것 같아도 박해 중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구원받는 사람이 증가했다. 이 같은 역사적 증거는 역설적으로 세상이라는 걸림돌이 복음 증거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의 세속화로 교회가 걸림돌이 될 때는 사정이 달랐다. 구원받는 사람은 고사하고 있는 교인마저 실망하여 교회를 떠난다. 교회가 사람에게 실망을 주어 교회를 배척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걸림돌이 전도의 문을 막아 교회를 괴롭힌다. 교회는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 교회는 세상에 대해 걸림돌이 되어 영혼 구원을 방해하고 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이제는 세상이 교회의 걸림돌이라고 탓할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통탄하고 교회의 본질 회복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