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면죄부
500년 전,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성당에 면죄부에 대한 95개의 반박문을 내건 것이 시발점이 된 종교개혁 운동은, 교황의 권력에 대한 거부와 나아가 교회 조직에 대한 거부로 확산되는 새로운 운동이었다. 루터 이전에도 교회 문에 반박문을 걸었던 운동이나, 가톨릭의 개혁을 촉구하는 개혁자들의 운동과 죽음이 있었지만, 루터가 한 운동을 ‘종교개혁’이라고 한 이유는 ‘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해 교황이 발행한 면죄부를 거부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중략)
이 면죄부에 관해 기독교(개신교)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죄 용서에 관한 다른 문화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회개기도를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신부는 회개의 대가로 노동이나 선행을 권면하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 면죄부도 성만찬의 용서의 선언으로 완전한 죄의 용서가 일어나지 않고, 일단의 ‘고행’이나 ‘선행’이 첨가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중략)
베드로 성당을 지을 때, 교회의 문화는 고행과 선행을 일정부분 면제해 주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연옥에 있는 선조들의 영혼들을 구원해 주고, 자신과 가족들의 구원을 약속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되었다. 면죄부와 교황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바로 이 운동을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으로 연결된 것이다.
<최대광, “탈 성직-교회” 「한국적 작은 교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