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냐, 선동이냐?
특정한 대상을 향해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면에서 설교와 선동은 비슷하다. 그럼에도 설교와 선동은 다르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여 청중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라면 선동은 이런 궁극적 목적에서 벗어나 특수한 집단의 특별한 이익을 위해 청중의 감정을 자극하는데 일차적 비중을 둔다.
한국교회의 설교가 성경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달하는 대신 설교자나 교회, 혹은 청중의 특수한 이해와 목적을 위해 성경을 인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설교가 선동으로 변질될 때가 많다. 메가 처치의 문제를 분석하면서 신광은 목사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포착하여 비판했다.
“거대한 군중 앞에서 말로 뭔가를 이루려 할 때 선전은 작동하기 시작한다. 결신자를 많이 만들어 내라는 부탁을 받은 수련회 강사, 목표로 하는 교회 사업의 추진 및 자금 확보, 갈등 해결 등을 부탁 받은 부흥회 강사, 수련회에 더 많이 참석하게 만들고 싶은 담임 목사 등이 말로 청중을 설득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들이 행동하게 만들려고 할 때 설교는 선전으로 변질된다. 히틀러의 열정적인 연설에 독일 국민들이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했듯이 충격적이고 강력하고 힘이 넘치는 설교를 들으면서 메가 처치 성도들은 선전에 감염되기 시작한다.”
2010년 4월에 뉴욕에서 열린 한 부흥회에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행한 설교는 예배와 설교의 형식을 빌려 행한 선동의 대표적 예다. 이것은 성경, 복음, 구원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중세 말기에 성 베드로 성당 건축 자금의 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팔았던 도미니크회 수사 요한 테첼의 종교적 궤변과 다르지 않다. 다음은 김홍도 목사의 뉴욕에서 한 설교다.
“내가 던지는 방석이 앞에 떨어지면 5,000불 헌금할 각오 돼 있으면 아멘해라. 나한테 떨어졌다 생각하고 3,000불 한번 해 보겠다는 사람 있나, 불황인 거 다 안다. 하나님은 불황일 때도 십일조 하는 것을 본다. 난 물질을 바쳐서 축복 받는 것을 너무나 많이 체험했다. 조용기 목사 빼고 나만큼 대접 받는 사람 아무도 없다. 내일 5,000불 헌금하는 사람 있으면 좋겠다. 한 명도 없으면 내가 망신스러운데,”
<배덕만, “한국교회 설교, 그 일탈의 역사” 「한국교회 설교, 무엇이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