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상징, 시흥교회의 분열을 어떻게 보십니까?
가브리엘 10.02.18 조회수 218
두 쪽 난 개혁의 상징, 시흥교회
담임목사와 시무 장로들, 재신임 투표 결과 놓고 치킨게임
8년 전 서울 금천구 시흥본동에 있는 시흥교회는 담임목사 불륜 사건으로 격랑에
빠졌다. 고소 건이 난무하는 등 목사와 교인들 간에 싸움이 치열했다.
똘똘 뭉친 교인들은 결국 목사를 내보냈다.
이참에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건강한 교회로 거듭나자고 의기투합했다.
산고 끝에 교인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고 특정인이 권력을 독점할 수 없는
민주적 구조를 가진 정관을 만들었다.
그 정관에 근거해 엄격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담임목사를 청빙했다.
정관을 만들 때나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나 교인들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2년간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밝고 희망찬 빛을 한껏 누렸다.
교회 역사 100년을 코앞에 둔 오랜 교회, 출석 교인 2,000명 가까이 되는
대형 교회로는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역사를 만든 것이다.
지금 이 교회는 8년 전 수라장으로 되돌아간 형국이다.
6년 전 청빙한 방수성 담임목사 재신임 투표 때문이다.
▲ 1월 10일 주일. 교인들은 길게 늘어선 줄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려 일일이 주민등록증으로
신원을 확인한 다음 투표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했지만, 표정은 대부분 밝았다.
선거관리위원회, 유효표 잣대 오락가락
선거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교회는 정관과 시행세칙에 근거해서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만들었다.
이들은 선거인 명부를 작성하고 주민등록증을 대조해서 신분을 확인해야만
투표할 수 있게 했다.
다른 대형 교회처럼 헌금 바구니에 투표용지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개인 투표소에 들어가서 준비된 기표 도구를 사용해 의사를 표시하도록 했다.
1월 10일 예배 중간 중간에 진행된 투표에는 1,500명이 넘는 교인들이
투표, 선관위원들이 놀랄 정도로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투표는 무사히 끝나고, 선관위원들은 개표를 시작했다.
개표 결과 담임목사 연임 정족수인 3분의 2를 10여 표 차로 간신히 넘겼다.
재검표는 당연했다.
재검표 도중 반대표가 찬성표 묶음에 들어간 것이 나왔고,
기표 도구가 아닌 것으로 찍은 것도 나왔다.
한 위원이 어느 것까지 유효표로 인정할 것인지 문의했다.
이때부터 논란이 벌어졌다.
선관위원 16명 중에 2명은 "교인들의 의사를 명백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정해 주자"고 했고, 14명은 "기표 도구로 찍은 것 중에서도
사람 인(人) 자가 분명한 것만 인정해 주자"고 했다.
격론 끝에 표결을 하니 14대 2의 주장이 고스란히 결과에 반영되었다.
재검표 결과는 정족수인 3분의 2에 크게 미달됐다. 부결된 것이다.
선관위 임원들은 당황했고, 한참 고심했다. 그리고는 재투표를 제안했다.
그러자 상당수 선관위원들이 "원칙대로 해야 한다"면서 격렬하게 반대했다.
즉 부결된 것으로 발표하자는 것이다. 선임 장로가 "이렇게 되면 어느 쪽도
승복할 수 없고, 교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며 재투표를 종용했다.
상황이 진정된 다음 가부를 물어 만장일치로 재투표를 결정했다.
처음부터 원칙을 분명히 정하지 않았다가
재검표할 때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논란의 여지를 없앤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소각하기로 한 것도
교인들의 마음에 분노의 불길을 지폈다.
▲ 선거관리위원들이 첫 번째 개표하는 장면. 이때까지는 순조로웠다. (왼쪽) 그러나 기표
도구에서 사람 인(人) 자가 아닌 뒷부분으로 찍은 것이 100장 넘게 나오면서 혼란의 수렁
에 빠져 들어갔다. (오른쪽)
공동의회, 대세 등지고 법 무시
일주일 사이 소문이 퍼졌고 유인물이 돌아다녔다.
시무 장로 8명이 모두 선거관리위원회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장로들에게
직격탄이 날아갔다.
"규정에 없는 재투표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것과
"투표용지를 소각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항의했다.
처음에는 진실규명위원회, 대책위원회를 만들자고 하더니 급기야
시무 장로들의 자진 사임까지 촉구했다.
일주일 뒤인 17일 주일에는 제직회와 공동의회가 연속으로 열렸다.
일주일 전 주보에 고지된 안건은 작년 결산과 올해 예산 처리다.
예정된 안건을 처리한 다음 공동의회에서 다시 제직회로 전환했다.
이 자리에서 선거관리위원장이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이때 시무 장로 중 한 사람이
"담임목사는 본인 신상에 관한 것이므로 사회를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방수성 목사는 "유고 상황이 아니므로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교인들이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면서 방 목사 편을 들었다.
시흥교회 규약에 의하면, "제직회나 공동의회에 상정된 안건이 회장 신상에 관한
사항일 경우 대리인이 회의를 주재하도록" 되어 있다.
상당수 교인은 장로들을 격렬히 성토했다. 장로들이 해명했으나,
교인들은 장로들의 설명을 들을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
긴 공방이 오간 뒤 방수성 목사가 마무리했다.
방 목사는 "모든 사항을 당회에 맡기자"는 안건에 대해 교인들 의견을 물었고,
부결됐다.
이어 "투표 결과 연임된 것으로 받아들이자"는 안건은 다수결로 가결됐다.
방 목사는 곧바로 "이것은 공동의회에서 최종 결정해야 한다"면서
"공동의회 개최를 제안해 달라"고 했다.
시무 장로 중에 "제직회에서 곧바로 공동의회 개최를 결정할 수 없다"고 하자,
방 목사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다"고 했다.
한 장로가 "교회 규약은 제직회가 청원하면 당회가 결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하자, 다른 교인은 "모든 사안을 당회에 맡기자는 것이 부결되었다.
지금 시무 장로들이 전부 선거관리위원들인데 어떻게 믿고 맡길 수 있겠나"고
반박했다.
심지어 "이런 원인을 제공한 시무 장로들은 사임하라고 권고하고 싶다"고 했다.
방수성 목사가 "공동의회를 속개해서 연임에 대한 제직회의 결의를 다루겠다"고
하자, 한 장로가 다시 "불법을 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다.
방수성 목사가 "누가 불법을 했는데 자꾸 불법을 이야기하냐,
그럼 이 자리에서 당회를 하겠다,
장로님들은 앞으로 나와 달라"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방 목사는 즉석에서 공동의회를 선언했다.
제직회의 연임 찬성 결정에 대해 찬반 처리를 해 달라고 했다.
먼저 "반대하는 사람 손들어 달라"고 한 뒤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달라"고 했다.
방 목사는 "더 이상 셀 필요가 없다"면서
"전체적인 결정으로 인해 담임목사는 연임되었다"고 선언하고
순식간에 끝냈다. 교인들은 박수로 환호했다.
공동의회 개회부터 폐회까지 꼭 1분이 걸렸다.
▲ 1월 17일 주일, 방수성 목사는 공동의회를 직접 주재해 자신의 연임 결정을 놓고 교인들
의 의견을 물었다. 참석한 상당수 교인들이 손을 들어 방 목사의 연임 결정에 찬성했다.
(왼쪽) 24일 주일 아침, 시무 장로들이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교인들에게 장로들의 입장을
담은 유인물을 나눠 주고 있다. (오른쪽)
목사와 장로 갈등 점입가경
다시 일주일 뒤인 24일 주일. 방 목사는
예배 시간 기도 순서에서 장로들 명단을 모두 빼고
부목사들로 채웠다. 장로들과 대화하지 않을 것이냐고 묻자,
그는 "물론 대화하고, 화합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제직회에서 당회를 거부했다.
먼저 제직회에서 논의하고 나중에 당회를 열겠다"고 했다.
수적 우위를 차지한 제직회를 기반으로 당회를 무력화하는 셈이다.
장로들 역시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 없다는 태도다.
시무 장로들은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교인들에게 유인물을 나누어 주었다.
로들은 "사전에 공고되지 않은 담임목사 연임을 불법적으로 결의한 것은
원천 무효"라고 했다.
또 "자신의 신상에 관한 것을 다루는 회의를 자신이 진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고 했다.
"당회를 무력화하고 장로들을 교인들의 적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장로들은 "방수성 목사의 임기는 2010년 3월 27일로 종료된다.
그전까지 재투표를 하지 않는 한 임기 연장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방수성 목사와 시무 장로들 간의 골은 깊고도 넓다.
이번 투표 때문에 사이가 벌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 만났던 6년 전부터 그랬다고 서로 생각하고 있다.
방 목사는 "저들은 처음부터 나를 반대했던 사람들"이라고 했고,
한 장로는 "방 목사가 개혁을 가장해서 위장 취업을 했다"고 했다.
방 목사는 "투표 당일 목사의 고유 권한인 설교도 못 하게 해 놓고는
선거관리위원들이 가가호호 방문해서 낙선 운동을 했다"며
일부 교인들이 쓴 사실 확인서를 보여 주었다.
한 장로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교인들까지 동원됐다.
재투표를 결사반대하는 것도 그들을 다시 모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표 과정에서 하자를 범하고 공동의회에서 무리수를 쓰는 등
양쪽 모두 큰 과오를 범했다.
더 큰 문제는 격앙된 감정의 벽과 깊은 불신의 골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이 상황을 짧은 시간 안에 수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양쪽 모두 개혁을 부르짖고, 교회의 미래를 염려한다고 주장하는 등
도덕적.신앙적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사태 해결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마치 치킨게임을 벌이는 듯하다.
시흥교회 사태는 두 그룹에게 큰 아픔을 주고 있다.
이 교회 교인들은 6년 만에 다시 큰 상처를 안게 되었다.
어느 연로한 교인은 "나는 목사가 하는 이야기도 듣기 싫고, 장로들 이야기도 듣기 싫어.
왜 자꾸 미워하고 욕해? 언제까지 이럴 거야" 하면서 울먹였다.
개혁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타격이다.
이 교회는 오랜 역사와 큰 규모의 기성 교회이면서도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교회로 거듭난 대표적 모델이었다.
그러나 그 이미지에 굵고 선명하게 균열이 생긴 것이다.
시흥교회 사태는 이래저래 많은 이들에게 깊은 절망감을 안겨 주고 있다.
(2010.1.26.뉴스앤조이/김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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