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은 왜 해마다 날짜가 다른가?
2-3세기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부활절 날짜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전개하였습니다. 155년경에는 부활절 날짜를 둘러싸고 로마교회 지도자인 아니케투스와 서머나 교회 감독인 폴리갑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요한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폴리갑은 자신이 여러 사도와 함께 매년 유월절을 지켜왔다고 하며 유월절이 예수님 때부터 내려온 전승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아니케투스는 일요일의 부활절은 유월절과 별도로 ‘안식 후’ 첫 날에 지켜지던 사도 시대 이래의 전통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부활절 날짜의 문제는 결국 이 문제로 기독교 제국이 분열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에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기독교인이 유대인의 유월절 역법(曆法)과 축제를 따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3세기 전반기 이래로 기독교인들은 부활절 시간표를 작정하기 위해 자신만의 역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니케아 공의회는 부활절 날짜를 춘분이 지난 만월(滿月) 후의 첫 일요일로 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은 유동적으로 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의 시간에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도 부활절 날짜는 일치되지 못하였습니다, 525년 부활축일 산출표를 만든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에 이르러서야 통일되었습니다. 그러나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새로운 역법을 도입함으로써 로마 가톨릭교회는 기존의 율리우스 역법을 쓰던 동방정교회와는 서로 다른 부활절 계산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70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개신교회도 그레고리력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동방정교회 중 그리스정교회는 20세기 들어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으나 부활절만은 율리우스력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러시아 정교회는 지금까지도 율리우스력을 따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방교회와 율리우스력을 따르는 동방교회는 부활절 날짜가 10일간 차이가 납니다.
<이성덕, 「이야기 교회사」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