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왜곡
교회에서는 “기도하면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혹은 “기도하면 자신의 일이 원하는 대로 잘 풀린다.”고 선전한다. 이와 같은 교회의 광고는 결국 좌절한 자들을 유혹하여, 즉 아무 투자 없이 자신의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각인시켜 그들을 들뜨게 한다.
이렇게 해서 교회는 기도를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가는 삶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요즘은 기도하면 복 준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소리가 있으니, 이제는 기도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으로 입증되었다고 가르친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보니, 이와 같은 말이 귀에 솔깃하게 들어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다시 그와 같은 말에 현혹되어 기도한다. 이익이 있기에 기도하는 것이다. 교회도 이익이 확실히 있으니 기도하라는 것이다. 투자성이 있다는 것이 교회의 주장이며 그 투자성이 있음을 과학과 경험으로 입증하려고 한다.
왜 기도하느냐 하면 그것은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기도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해야 한다. 그래야 독생자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으며 그 사랑을 믿을 수 있어야 아무런 이익이 없더라도 다니엘의 친구들 같이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살아계셔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며 지켜주신다는 신뢰가 있어야 그와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박기삼, 「누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