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가신 예수님(2)
“연극을 끝내라”--마태복음 19:16-22 2007.10.28 (김영봉 목사)
1.
신애라는 30대 중반의 여성이 유치원생 아들 준을 데리고 죽은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갑니다. 밀양에 거의 다달아 차에 고장이 납니다. 신애는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정비사를 부릅니다. 연락을 받고 찾아온 노총각 정비사 사장 종찬은 신애에게 한 눈에 반해 버립니다. 종찬의 도움으로 신애는 밀양에서 피아노 학원을 차리고 살림을 시작합니다. 신애는 동네 사람들에게 피아노 학원을 홍보하면서, 죽은 남편의 뜻을 받들어 남편의 고향으로 살러 왔다는 사실을 은근히 흘리고 다닙니다. 밀양 사람들은 필시 무슨 다른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도, 신애의 말을 믿어주는 척 합니다.
밀양에 정착하자 신애는 투자를 위한 좋은 땅을 찾아 달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다닙니다. 은행에 가지고 있는 돈은 470만원이 전부였지만,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행세합니다. 이렇게, 밀양 사람들로부터 동정도 사고, 부러움도 사면서 자리 잡아 갈 즈음에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들 준이 다니던 웅변 학원 원장이 신애의 돈을 탐하여 아들을 유괴하고 돈을 요구합니다. 수천만원의 몸값을 요구하는 범인에게 가진 돈 470만원을 모두 주고 사정을 했지만, 아들 준이는 이미 범인의 손에 살해된 후였습니다. 신애는 유일한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듯,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듭니다.
아들의 사망 신고를 마치고 휘청거리며 동사무소를 나오던 신애는 “상처받은 영혼을 위하여”라는 부흥회 현수막을 보게 됩니다. 이미 약국 주인 김집사로부터 부흥회 참석 권고를 들은 신애는 조심스럽게 그 집회로 향합니다. 집회가 끝나고 다함께 기도하는 중, 신애는 끓어 오르는 슬픔을 내어 놓고 대성통곡을 합니다. 부흥강사는 신애에게 다가와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 기도를 해 줍니다. 신기하게도, 통곡은 가라않고 신애의 마음은 잠시 평화를 찾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그는 교회를 다니면서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해 간증하기 시작합니다.
2.
교회 안에서 믿음 좋은 사람으로 점차 인정을 받던 즈음, 신애는 모두를 놀라게 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범인, 자신의 유일한 희망 줄을 끊어 버린 박도섭을 찾아가 용서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입니다. 교인들도 말리고, 목사도 말리고, 그림자처럼 그를 지키고 있던 종찬도 말리지만, 신애는 고집을 부리고 감옥으로 향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신애의 믿음과 용기에 감탄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뜻하지 않은 반전이 일어납니다. 아들을 죽인 범인을 마주한 신애가 긴장되고 굳은 표정을 가까스로 누그러뜨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용서하러 왔다”고 말하자, 범인 박도섭은, 자신도 이미 하나님을 만나 그동안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고 대답합니다. 신애는 갑작스러운 반전에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신애는 면회를 끝내고 교도소 마당으로 나오다가 그만 기절해 버립니다. 그 이후로, 신애는 하나님과의 투쟁을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애의 분노는 자신의 용서의 권리를 빼앗아 갔다는 사실에서 나왔습니다. 자신은 초인적인 용기를 내어 용서하러 갔는데, 하나님이 그 기회를 박탁했다는 것입니다. 신애는 이 사실에 대해 미칠듯이 저항합니다. 영화의 후반으로 가면, 증오의 눈빛으로 하늘을 응시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야외 부흥회를 방해하고 나오면서 신애는 고소하다는듯 하늘을 응시합니다. 약국 주인 강장로를 유혹할 때도 하늘을 응시합니다. 차 안에서 유혹하던 신애는 강장로를 밖으로 인도해냅니다. 하늘에서 훤히 내려다 보이는 들판에서 강장로가 유혹에 이끌려 신애를 안고 눕자, 신애는 하늘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보여? 잘 보이냐구?” 보란 듯이, 뻘건 대낮에 하나님의 사람 강장로가 타락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하나님께 복수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장로는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 같다”면서 끝내 신애의 유혹을 거부합니다.
마침내, 신애는 하나님께 대한 최후의 복수로서 자살을 시도합니다. 팔목의 혈관을 자른 후, 터질 듯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신애는 하늘을 응시하면서 “봐? 보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살려 달라고 애걸합니다. 병원에 실려간 신애는 상처와 함께 정신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를 다 끝내고 퇴원하여 머리를 손질하러 간 미용실에서 신애는 범인 박도섭의 딸과 마주칩니다. 원수의 딸에게 머리카락 손질을 맡기게 된 운명의 장난을, 신애는 참지 못하고 박차고 나옵니다. 이 때, 그는 또 다시 하늘을 응시합니다.
영화는, 집으로 돌아간 신애가 거울을 세워 놓고 가위를 들어 스스로 머리카락을 다듬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때 종찬이 들어와 거울을 들어줍니다. 신애는 종찬이 들어준 거울을 보고 머리카락을 다듬고, 머리카락은 밀양의 따뜻한 햇볕이 내리 쪼이는 구석으로 날아갑니다. 이렇게 영화는 끝이 납니다.
3.
저는 영화 <밀양>에 대한 4회 연속 설교를 시작하는 첫 시간, 신애라는 인물을 주목하려 합니다. 신애는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이 만든 각본에 따라, 자신이 감독이 되고, 자신이 주인공이 된 연극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현실의 생을 살고 있었다기보다 자신이 스스로 만든 연극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고로 죽은 남편이 죽기 전에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음이 나중에 드러났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남편과 관련된 모든 것이 진절머리 나도록 싫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신애는 그 모든 사실을 부정하고, 남편이 자신만을 사랑하다가 갔다고 스스로를 속입니다. 친정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내려 온 것도 그런 까닭이었고, 동네 사람들에게 은근히 열녀 혹은 현모양처인 것처럼 흘리고 다니는 것도 연극의 일부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는 돈 많은 사람처럼 행세하고 다닙니다. 은행 470만원밖에 없으면서, 실제로 땅을 살 것처럼 찾아다니고, 계약 직전까지 가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면 “있어 보여야” 했고, 있어 보이려면 철저해야 했습니다.
엄밀하게 보면, 신애의 연극이 아들 준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의 연극이 도에 지나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신애는 아들의 죽음의 이유를 두고 하나님께 따져 묻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왜 자기 아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었느냐고 질문합니다. 세상에, 하나님처럼 억울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어려움에 닥치면 하나님께 원인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올무에 자신이 걸려들은 것인데도 말입니다. 신애가 “있어 보이기 위해” 연극하지 않았더라면, 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즈음에서,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신애는 연극을 끝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신애의 연극은 한 층 더 심각해집니다. 그는 그 연극에 신앙을 끌어 들입니다. 신애는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는 감정적인 변화를 하나님의 치유로 미화하고, 홀로 있을 때는 암흑에서 헤매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빛을 찾은 사람처럼 연극을 합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변화를 간증하며 전도하기도 합니다. 역전에서 찬양하며 전도하는 모임에도 참여합니다. 교회 사람들은 그의 연극에 매료되어갑니다.
신애는 마침내 그 연극을 절정으로 끌어올릴 계책을 세웁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신문에 날 일이고, 다큐멘터리로 다룰만한 일입니다. 신애는 그 ‘믿음의 이적’에 도전합니다. 듣는 사람들마다 놀라며 말립니다만, 신애는 굳이 감옥까지 찾아가 용서하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신애에게 종찬이 아주 중요한 대사를 던집니다.
장면 chap. 15 from 1:28:17 to 1:29:10
“마음으로 용서하면 됐지, 굳이 교도소까지 면회가서 용서한다는 말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신애씨가 성자도 아니고……”라는 종찬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애의 숨겨진 의도가 이 말에 드러나 있습니다. 신애는 열부에서, 현모양처에서, 믿음 좋은 여인으로 그리고 이제는 성녀로서의 연극에 도전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에게는 박도섭을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박도섭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신애가 기대한 것은, 박도섭이 참혹한 모습으로 자신 앞에 나타나, 용서한다는 자신의 말에 눈물 콧물로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신애는 그렇게 하여 통쾌한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실은 은밀한 복수극이었지만, 사람들로부터는 성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가막힌 연극이었습니다.
4.
그런데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입니다. 깐느 영화제 여우 주연상을 받은 여주인공의 탁월한 내면 연기도 이 장면에서 가장 빛이 납니다. 그 장면을 함께 보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