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집 어딘가에는 예수님의 그림이 한 장 정도
는 걸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살아계신 예수님'이라는 말을 한
번 이상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살아계신 예수님 대신에 예수님
의 그림 한 장만 달랑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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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새누리교회의 창립예배를 드렸던 2007년 4월 8일이 없었다면, 나에게 4
월은 영국 시인 T.S. 엘리엇의 싯귀처럼 '잔인한 달'로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것
은 먼 과거 속의 어느 해 4월에 몇몇 친구들에게 매우 끔찍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
이다.
1972년 12월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가 시작되자 대학생들의 데모는 더욱 격
렬해졌으며 박정권에 대한 국민의 반발심을 강하게 자극하자 박정권은 1974년 1
월 8일 긴급조치법을 선포하며 데모에 참여한 학생과 시민을 법으로 탄압하기 시
작했다. 그런 와중에 민청학련 사건이 일어나자 중앙정보부는 그 배후가 인혁당
재건위원회라고 발표하며 소위 <인혁당 사건>이라는 것을 날조하여 무고한 시민
과 학생들을 마구 잡아들였다. 그리고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8 명의 젊은이에
게 사형을 선고했고 15 명의 젊은이에게는 징역 15 년에서 무기징역까지 중형을
선고했다. 더욱이 그 다음 날인 4월 9일 사형을 선고한 지 불과 18 시간만에 8 명
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이에 제네바에 본부가 있는 <국제법학자협회>는 1975
년 4월 8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고 그 젊은이들의 사형을 <사법살인>
이라고 규탄했다. 그 무렵 나는 긴급조치법이 선포되기 전에 이미 징계처분을 받고
군대에 강제로 입대조치된 상태라 그들에 대한 소식을 나중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8 명의 젊은이들이 사형을 당한 지 32년이 지난 2007년 1월 23일, 새누리
교회가 창립되기 직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들이 무죄를 선고받았을 때, 나는 덕소에서 살고 있었으며 건강상태가 몹
시 좋지 않아 주일에는 바로 집 옆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러던 어
느날 나는 적지 않은 수의 성도들이 모여 새누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
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김은자 권사의 강권으로 인해 나는 힘들지만 새롭
게 마련된 새누리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렸고 2007년 4월 8일에 창립예배를 드렸
다. 이제 그날로부터 5 년의 시간이 지났으며 새누리 교회의 다섯 번째 생일을 맞
이하게 되었다. 바로 그와 같은 시점에서 나는 새누리 교회에서 보낸 5 년의 시간
과 그 이전의 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그런데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며 내가 제
일 크게 느낀 것은 '너무나도 허망하다'는 것이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목사님 딸을 따라 교회행사에 참석한 이
후 초등부와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그리고 장년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교회에 출석한 날들을 모두 합치면 그 숫자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벽에 걸려 있는 예수님의 그림과 똑같
은 것이며 내가 알고 있는 성경말씀은 내가 지니고 있는 역사학이나 철학 혹은 문
학의 지식과 똑같은 차원에 속하는 것이기에 나는 내 자신의 믿음에 대해 '너무나
도 허망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와 같은 허망함은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느낀 것은 아니다. 그
러한 생각은 예전에도, 특히 새누리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하면서 더욱 더 강하게
느꼈던 점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새누리 교회에서 보낸 5 년 동안 얻은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바로 제자훈련을 통해서 얻은 것이었다. 나는 제자훈련을 통
해 그 때까지 알지 못했던 성경지식도 새롭게 얻을 수 있었고 또 그릇되게 알고 있
었던 여러 가지 내용들도 바로잡을 수 있었으며 구원과 교회, 기도 등 신앙생활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항들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니고 있는 믿음의 정체를 좀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자훈련 과정에서 나를 매우 고통스럽고 심각하게 만든 것은 말씀의 적용 문
제였다. 그 문제는 나로 하여금 주어진 성경 말씀과 '내 구체적인 삶 속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을 연결해서 생각하도록 만들
었는데 그런 관점에서 내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내 안에는 구체적인 삶으로 살아
계신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만 끊임 없이 느끼게 되었다.
우선 나는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가족간의 인간관계에서부터 내가 속한 작은 집
단과 사회, 그리고 모든 대인관계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혀 크리스챤다운 모
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으며 내 자신의 모습에서 주님의 형상이나 향기를 조금
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만일 그런 내 자신의 모습을 제 3자의 눈으로 본다면, 나를
크리스챤으로 인정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며 오히려 나를 신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무신론자로 보거나 심지어 반기독교인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바로 그
점이 나를 매우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며 제자훈련을 거듭할수록 <과연 나에게 믿음
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하는 물음만 되묻게 되었다.
만일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열심히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며 충성스럽게 교회의
일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믿음생활이며 그런 것이 크리스챤의 모습이라면
나도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의 적용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그와 같은 형식적인 크리스챤의 모습은 결코 살아계신 예수님을 증
거할 수 있는 크리스챤의 참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내 안에 새
겨진 예수님의 모습은 벽에 걸려 있는 그림 속의 예수님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하
나의 성스러운 이미지였을 뿐이다.
이제 부활절과 창립 5주년 기념일을 동시에 맞이하며 나는 벽에 걸린 그림으로
만 존재하는 나의 예수님이 내 안에서 살아계신 주님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간절
히 기도한다. 만일에 그러한 부활절과 창립 5주년을 맞이하게 된다면 4월은 내 생
애에서 가장 기쁘고 의미 있는 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