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헌금]
돈의 노예가 된 상태에서 나오는 헌금 정신이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십일조 하면 복 받고 감사헌금 하면 더 복 받는다고 여기는 우상종교 교리의 극치이다. 왜냐하면 탐심이 곧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골3:5). 탐심이라는 우상으로부터 구출되지 못하고 복의 노예로 기어들어가는 자이다.
연보하면 복 받는다는 주장은 하나님과 흥정하려는 심보이며 그런 교회는 도박장과 같다. 아마 연보하지 않아도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구원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복음을 적용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 복이 무엇인가? 생명나무에서 사람을 쫓아낸 그 하나님과 만나, 저주를 받지 않고 영생을 얻는 것이 참된 복이 아닐까. 그런 복이 연보나 헌금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직 제 삼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열매이다. 이것을 아는 성도는 온 몸을 드린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살려내기 위해 돈에 매달리는 것은 안할 것이다. 왜냐면 이미 살았기 때문이다. 교회라는 단체를 보존하기 위해 운영자금과 사업자금에 급급하는 돈의 노예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교회는 키우라고 세워진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바치라고 세워진 것이다. 성도 개개인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날마다 헌신해야 한다. 복이란 이미 완성된 복이 되신 주님과의 관계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연보란 이미 그 완성된 복을 누리고 있음을 사랑의 형식으로 내어 놓는 것이다. 이것이 제물의 완성이다(빌4:18).
<이근호, 「십자가를 아십니까」>